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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생물다양성여행> 푸른길, 현명한 시민들이 걷는 방법! | 조회수 2611 | 등록일 2014.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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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길, 현명한 시민들이 걷는 방법! 왜 푸른길을 따라 걸을까?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 걸어가면 비로소 길이 되었다.’ 중국의 루쉰은 이렇게 말했다. 길은 희망과 통한다. 여기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로운 기회와 희망이 찾아드는 법이다. 도시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비좁다. 때로는 지저분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도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다.
우산을 든 중년의 어르신들이 가볍게 걸어갔다.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도 휙 지나쳤다. 바쁜 볼 일이 있는 모양이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재잘재잘 걸어갔다. 얼핏 보기에 이 길은 나무가 우거진 여느 길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뭔가 다른 특징이 보였다. 길은 세 개가 나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연신 무섭게 달리는 큰 길과 그 옆에 보도블럭이 깔끔하게 놓인 인도, 다시 그 옆에 나무들이 우거진 푸른길이 이어져 있다. 그런데 걷는 사람들은 모두 보도블럭 길이 아닌 나무가 우거진 푸른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풀이 있고 나무가 있는 푸른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은 조용하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안전하다. 복잡하고 위험한 도로를 피해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푸른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푸른길이구나. 시민들이 공원을 가꾼다구요? 광주는 현명했다. 예전에 이 길은 기찻길이었다. 광주와 화순, 보성, 여수를 연결하는 광주-여수간 철도는 1930년 12월 25일 개통했다. 이 철도는 학생들의 통학열차이고, 남광주시장 상인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남광주시장은 보성과 여수에서 올라온 싱싱한 수산물이 유통되는 큰 시장인데,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새벽기차 타고 와서 남광주시장에서 장을 펼쳤다. 1970년대 광주의 인구가 늘어나고 도심이 커지면서 철길 안쪽에만 살고 있던 사람들의 집이 철길을 넘어서 외곽으로 넓어졌다. 그러자 철도는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하루 30여 차례 이상 운행하는 기차 때문에 철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소음과 진동, 매연에 시달렸고, 도심으로 진입하는 자동차는 철길건널목 때문에 교통체증이 생겨 불편했다. 또, 해마다 10여 명 이상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고, 소음과 매연 공해로 인근 18개교 학교와 주민들의 민원이 그치지 않았다. 또, 철도 양쪽 10m(약 11만 평)가 시설녹지로 묶여 시민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주기도 했다.
지금 이 길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 1만여 명이 이용하는 중요한 길이 되었다. 푸른길은 도심 한가운데 푸른 숲이 우거져 시원한 바람길이 되고, 다양한 생명들이 찾아드는 중요한 생태녹지축이 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은 역시 현명했다. 재미난 아이디어 총출동!
길은 긴 선(線)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선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는 면(面)으로 넓어지고 있다. 최근 광주 동구 동명동과 산수동, 지산동 푸른길공원 주변에는 카페와 갤러리, 화실 같은 새로운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도심 속 갤러리 ‘신시와’와 통기타 라이브카페 ‘산울림’, 한옥카페 ‘봄날은 간다’,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푸른 갤러리’ 등이 문을 열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폐가를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광주 시민들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철도 이전 운동을 벌였고, 또 다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푸른길을 정성껏 가꾸었다. 이 놀라운 끈기와 현명한 지혜를 다시 한번 발휘하여 푸른길이 더욱 무성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푸른길 홈페이지 http://greenways.or.kr/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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