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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생물다양성여행> 푸른길, 현명한 시민들이 걷는 방법! 조회수 2247 등록일 2014.06.05

푸른길, 현명한 시민들이 걷는 방법!

왜 푸른길을 따라 걸을까?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 걸어가면 비로소 길이 되었다.’ 중국의 루쉰은 이렇게 말했다. 길은 희망과 통한다. 여기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로운 기회와 희망이 찾아드는 법이다. 도시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비좁다. 때로는 지저분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도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변신을 꿈꾸는 도시, 광주를 찾았다. 마침 촉촉하게 내린 비가 도시의 먼지를 말끔하게 씻어낸 덕분에 나무도 풀도 선명한 초록빛으로 반짝였다. 이 길에 대한 유명세를 적잖게 들었던 터라 신발끈을 묶고 걸을 준비를 단단히 했다. 길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도심 가운데 나무들이 가장 무성하게 자란 곳, 초록띠가 이어진 곳이 바로 푸른길이다.

우산을 든 중년의 어르신들이 가볍게 걸어갔다.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도 휙 지나쳤다. 바쁜 볼 일이 있는 모양이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재잘재잘 걸어갔다. 얼핏 보기에 이 길은 나무가 우거진 여느 길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뭔가 다른 특징이 보였다. 길은 세 개가 나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자동차들이 연신 무섭게 달리는 큰 길과 그 옆에 보도블럭이 깔끔하게 놓인 인도, 다시 그 옆에 나무들이 우거진 푸른길이 이어져 있다. 그런데 걷는 사람들은 모두 보도블럭 길이 아닌 나무가 우거진 푸른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풀이 있고 나무가 있는 푸른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은 조용하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안전하다. 복잡하고 위험한 도로를 피해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푸른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푸른길이구나.

시민들이 공원을 가꾼다구요?

광주는 현명했다. 예전에 이 길은 기찻길이었다. 광주와 화순, 보성, 여수를 연결하는 광주-여수간 철도는 1930년 12월 25일 개통했다. 이 철도는 학생들의 통학열차이고, 남광주시장 상인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남광주시장은 보성과 여수에서 올라온 싱싱한 수산물이 유통되는 큰 시장인데,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새벽기차 타고 와서 남광주시장에서 장을 펼쳤다.

1970년대 광주의 인구가 늘어나고 도심이 커지면서 철길 안쪽에만 살고 있던 사람들의 집이 철길을 넘어서 외곽으로 넓어졌다. 그러자 철도는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하루 30여 차례 이상 운행하는 기차 때문에 철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소음과 진동, 매연에 시달렸고, 도심으로 진입하는 자동차는 철길건널목 때문에 교통체증이 생겨 불편했다. 또, 해마다 10여 명 이상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고, 소음과 매연 공해로 인근 18개교 학교와 주민들의 민원이 그치지 않았다. 또, 철도 양쪽 10m(약 11만 평)가 시설녹지로 묶여 시민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주기도 했다.


 철도를 옮겨달라는 요구는 197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세월이 흘러 1988년 6월 시민들이 ‘도심철도이설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 끝에 1989년 9월 광주시는 광주역-효천역 구간(10.8km)을 폐선하고 효천역-송정리역 구간(11km)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도심철도의 폐선이 확정된 이후에도 예산이 없어 도심철도 이설공사는 진행되지 않다가 1995년부터 단계별로 이루어졌다. 이후 폐선부지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이곳을 경전철로 활용하려는 광주시에 반대하면서 경전철 도입반대 주민결의대회, 서명운동 같은 활동을 벌였다. 2002년 5월 마침내 광주시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폐선부지를 근린공원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2002년 6월 ‘푸른길공원’ 조성계획을 수립했다.


 반가운 결정이 나자 광주 시민들은 더욱 분주해졌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공원으로 가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푸른길공원 기본계획이 수립되자, 2003년 광주의 모 건설사에서는 조선대 앞 철길 535m를 기탁했다. 그리고 남구 대남로, 백운광장~동성중, 동구구간, 남광주 폐선부지까지 푸른길은 조금씩 늘어났다. 시민들은 내 나무 한 그루를 푸른길공원에 심는 ‘푸른길 100만 그루 헌수운동’에 참여했다. 또, 나무뿐만이 아니라 벤치 기증, 기념정원 조성, 기업과 단체의 숲 등 다양하게 푸른길공원에 참여했다. 이렇게 10년의 노력 끝에 광주시 동구와 남구로 이어지는 7.9km에 이르는 푸른길(면적 120,227.6㎡)이 이어졌다.

지금 이 길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 1만여 명이 이용하는 중요한 길이 되었다. 푸른길은 도심 한가운데 푸른 숲이 우거져 시원한 바람길이 되고, 다양한 생명들이 찾아드는 중요한 생태녹지축이 되고 있다. 광주 시민들은 역시 현명했다.

재미난 아이디어 총출동!


푸른길에선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옛 남광주역에는 열차 객실을 재활용한 기차도서관과 카페가 있고, 푸른길 방문자센터도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월 시민들이 참여하는 푸른길 별별장터와 포장마차도 문을 열고, 4월엔 푸른길 가든 페스티벌, 8월에는 푸른길 축제, 10월엔 낙엽축제를 연다. 푸른길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조사하는 생태모니터링도 하고, 도시숲과 녹지를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인문학 강좌도 연다. 길의 역사와 주변 마을의 볼거리, 풀꽃나무를 배우는 푸른길학교도 문을 연다.

길은 긴 선(線)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선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는 면(面)으로 넓어지고 있다. 최근 광주 동구 동명동과 산수동, 지산동 푸른길공원 주변에는 카페와 갤러리, 화실 같은 새로운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도심 속 갤러리 ‘신시와’와 통기타 라이브카페 ‘산울림’, 한옥카페 ‘봄날은 간다’, 갤러리와 카페를 겸한 ‘푸른 갤러리’ 등이 문을 열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폐가를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외국에서도 폐선된 철길을 공원으로 가꾼 사례가 있다. 일본의 시모가와라 녹도, 오오시마 녹도공원과 가메이도 녹도공원, 무사시노시 그린파크 녹지, 아카바네 녹도공원, 니시마치 녹도, 사카에 녹도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미국 뉴욕 하이라인과 독일 베를린 철도공원 역시 철길이 사라진 곳에 푸른 공원을 꾸몄다. 예전 철길이던 시절에는 사람과 화물을 싣고 나르던 분주한 길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한가롭게 머물고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철도 폐선이 있는 우리나라 도시에서도 푸른길을 보고 배우기 위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앞으로 다른 여러 도시에서도 개성 있는 철길의 변신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푸른길에는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광주시는 2013년부터 2024년까지 총 1조9천억 원을 들여 41km에 이르는 도시철도망 건설 계획을 세웠다. 인구가 늘면서 교통문제를 해결할 해법을 찾기 위해서이다. 저심도 방식으로 건설되는 이 도시철도 2호선이 들어서면 푸른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백운광장에서 조선대학교 앞 구간의 무성한 숲이 사라지게 된다.
 

광주 시민들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철도 이전 운동을 벌였고, 또 다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푸른길을 정성껏 가꾸었다. 이 놀라운 끈기와 현명한 지혜를 다시 한번 발휘하여 푸른길이 더욱 무성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푸른길 홈페이지 http://greenways.or.kr/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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