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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생물다양성여행】남이섬에는 호반새가 살아요! | 조회수 2685 | 등록일 2014.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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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의 생물다양성 여행> 남이섬에는 호반새가 살아요!
<사진촬영 이재흥> “아이고, 깜짝이야!” 큰소쩍새의 부리부리한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동그란 나무구멍에 얼굴만 내민 큰소쩍새가 마치 나를 노려보듯 큰 눈을 부라렸다. 큰소쩍새는 나와 한참 거리가 떨어진 높은 나무의 구멍에 앉아 있다. 더구나 나는 망원경을 통해 관찰하고 있지만 그 강렬한 눈빛에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파랑새는 이 일대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을법한 높은 나뭇가지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다. 청록색 깃털과 빨간 부리, 빨간 다리의 색깔이 대비되어 매우 선명하다. 행운의 새라고 알려져 있지만 성격은 매우 괴팍한 파랑새는 마치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장수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짙푸른 나뭇잎에 숨어 열심히 지저귀는 꾀꼬리와 흰눈썹황금새의 노란 빛깔도 황홀하다. 올빼미 새끼 두 마리는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녀석들은 야행성이라 낮에는 푹 자야하리라. 올빼미를 관찰한 뒤 다른 곳으로 조용히 이동하려는데, 바로 내 앞에 작은 동고비가 날아왔다. 길 가운데 생긴 물웅덩이에 목을 축이러 날아온 것이다. 녀석은 겁이 없는 걸까, 내가 만만해보인 걸까? 내 앞까지 바짝 다가와 물 마시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 놀랍고도 신기하다. 그 자리에서 벌을 서듯 꼼짝달싹하지 않고 앙증맞은 동고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여기는 남이섬, 우리는 지금 남이섬에 여름철새를 관찰하고 새 공부를 하러 왔다. 새 전문가들도 일명 ‘대포’라고 부르는 긴 망원경과 망원렌즈를 지고 찾아왔다. 전문가들의 고급장비 덕분에 큰부리까마귀와 딱따구리, 올빼미도 가까이에서 보듯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남이섬과 새 탐조?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갸우뚱해질 것이다. 남이섬은 1980년대 강변가요제를 해마다 열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2000년 무렵에는 드라마 ‘겨울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었다. 음악소리가 요란하고,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곳이 바로 남이섬이다. 이 시끌시끌한 관광지에 왜 새 전문가들이 찾아오고 있을까?
쓰레기와 재활용의 천국, 남이섬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남이섬은 북한강 한가운데에 반달모양으로 떠 있다. 예전에 남이섬은 강물이 차오르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뭍이 되는 쓸모없는 모래밭이었다. 1944년 청평댐을 완공하면서 비로소 섬다운 섬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 강물에 잠겼던 이 땅에는 억센 뽕나무만 살아남았다. 1965년 고 민병도 회장은 한국은행 총재를 사임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이 모래섬을 사들였다. 그리고 나룻배로 드나들면서 이 불모의 땅에 나무를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나무들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심는 족족 말라죽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잣나무, 벚나무,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를 심고 또 심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2001년 9월, 지금 남이섬의 대표인 강우현 사장이 이곳에 왔을 때 남이섬은 최악이었다. 손님도 없고 돈도 없고, 쓰레기만 가득했다. 첫 업무는 청소였다. 그전부터 버려진 쓰레기와 땅속 깊숙이 묻힌 쓰레기, 강물에 던져진 쓰레기까지 취임 2년 동안은 쓰레기만 치워야 했다. 나중에 집계해 보니 일반쓰레기와 건축폐기물 쓰레기를 합쳐 무려 3,500톤이 넘었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1억6,40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였다. 치울 건 치우고 남은 쓰레기는 재활용하기로 했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버리다 지쳐서, 더 이상 버릴 데가 없어서 재활용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나무토막과 소주병, 건축물 자재, 낡은 당구대, 유리조각까지 다시 쓸 순 없을까 고민했다. 썩은 나무에다 그림을 그리고, 간벌한 나무를 깎아 장군상을 세웠다. 돌멩이를 쌓아 담장을 만들고, 공터에도 돌멩이를 깔아 광장을 꾸몄다. 말라서 죽은 갈대를 모아 김치 움막을 짓고, 깨진 기왓장은 담장 위에 얹었다. 외부 예술가들도 이 신나는 재활용 예술에 그들의 감각을 보탰다. 쓰레기중 가장 많은 것은 빈 소주병이었다. 땅을 파도 소주병이 나오고 강에서도 나왔다. 그래서 이 소주병에 열을 가하고 납작하여 눌러 타일을 만들고, 담장으로 만들고, 조명기구와 조형물로도 만들었다. 남이섬 가운데는 이슬정원이 있다.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이 곳은 원숭이 우리였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자꾸 소란을 피워 우리를 철거하고, 폐품을 재활용하여 정원으로 꾸몄다. 이 정원에 소주병 3,000여 개가 들어갔다. 담장에 끼워 넣고, 납작하게 녹여 타일로 붙이기도 했다. 여기에 쓰인 소주병은 대부분 참이슬 병이었다. 그래서 매우 낭만적인 ‘이슬정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남이섬 한쪽에는 남이장대라는 2층 누각이 서 있다. 이 건축물의 재료는 매우 특별하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던 문화재를 모아서 세운 재활용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2005년 동해안 산불 때 낙산사가 불타면서 죽은 소나무 500주를 사들여 건물 기둥을 세웠다. 2006년 수원화성 서장대에 불이 났을 때 타다 남은 목재도 가져왔고, 2008년 쌍계사에서 옛 기와 천여 장을 얻어와 지붕을 얹었다. 따지고 보면 쓰레기지만, 쓰레기라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우리 문화재들이 남이섬에서 되살아났다. 그렇게 남이섬 사람들은 재활용의 달인이 되었다. 쓰레기를 더 이상 버릴 데가 없어서 시작한 재활용이지만 지금은 습관이 되어 모든 걸 다시 쓰고 고쳐 쓴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없다. 이제는 환경센터를 설치하여 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수집하고 분류해서 재활용하고 있다. <사진촬영 이재흥> 새 전문가들이 찾아오는 까닭 이 섬을 살리는 길은 가장 자연스러운 길, 자연을 먼저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신주를 뽑고 전선은 묻었다. 그리고 해마다 나무를 심었다. 남이섬에는 300종이 넘는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은행나무와 굴피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는 각각 군락지를 이루거나 긴 숲 터널을 만들어 남이섬만의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미선나무와 백진달래, 백송 같은 천연기념물도 이곳에 뿌리내렸다. 동물은 풀어서 길렀다. 타조가 거닐고 토끼가 뛰어다니고 청설모가 나무 위를 재빠르게 기어오른다. 섬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남이섬의 풀밭에는 잔디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들풀이 어울려 자란다. 봄마다 하던 잡초제거작업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새들이 날아들었다. 덕분에 남이섬의 아침은 새 지저귀는 상쾌한 소리로 시작되었다. 왜 새들이 날아왔을까 알아봤더니 농약을 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풀밭에는 곤충과 벌레가 꼬물대고,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새들이 북한강을 넘어 날아왔다. 새들은 이곳저곳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곤충과 벌레, 달콤한 열매를 열심히 먹고 똥을 쌌다. 새의 똥 속에는 채 소화되지 않은 씨앗이 들어 있다. 그 씨앗이 남이섬에서 싹을 틔워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꽃과 나무들도 자라게 해 주었다. 남이섬은 사람의 손으로 가꾼 인공자연으로 유명한 곳인데, 새들 덕분에 점점 자연 그대로의 섬으로 바뀌고 있다. 남이섬에서 볼 수 있는 새는 텃새와 철새를 합쳐 30종 가량이나 된다. 여름철새는 왜가리와 쇠백로, 파랑새, 꾀꼬리, 청호반새 등이 있고, 겨울철새는 쇠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같은 오리류들이 있다. 까막딱따구리와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같은 딱따구리류도 살고 있다. 이 중 까막딱따구리와 황조롱이, 원앙은 천연기념물이지만 남이섬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중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새이자 새 전문가들이 기꺼이 찾아오게 만드는 새는 바로 호반새이다. 희귀종 중의 희귀종이라 할 수 있는 호반새는 여름 무렵에 우리나라로 날아와 날이 추워지면 강남(중국 남부, 대만, 말레이시아 일대)으로 날아간다. 예전에는 한반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름철새였는데, 그 수가 많이 줄어들어 좀처럼 구경하기가 힘들다. 이 귀한 호반새가 해마다 남이섬을 찾아오고 있다. 이어서 새 전문가들도 이 호반새를 관찰하기 위해 카메라와 망원경 같은 탐조장비를 챙겨서 기꺼이 이 섬을 찾아오는 것이다.
2013년 남이섬 입장객은 270만 명이 넘었다. 하루 평균 7,400명이 찾는 곳, 이 시끌시끌한 유명관광지에 다양한 새들이 어울려 산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풀밭에서 뛰어노는 토끼와 타조, 청설모, 다람쥐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겁내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땅에서 맘껏 즐길 뿐, 높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트고 먹이를 찾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이섬에는 이렇게 서로 영역이 다른 동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십 년 전에 남이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먹고 마시면서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들썩들썩한 유원지를 기대하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요즘 방문객들은 바쁜 일상에서 맛보지 못한 여유와 위안, 휴식, 이 섬만의 문화를 찾아 남이섬으로 찾아든다. “남이섬에는 왜 오세요?” 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올 때마다 달라서요.” 남이섬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 남이섬 http://www.namisu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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