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Letter
<박경화의 생물다양성 여행> 2편_숲에는 왜 야생동물이 살아야할까? | 조회수 2397 | 등록일 2014.05.16 |
---|---|---|
숲에는 왜 야생동물이 살아야 할까? 쓰러지는 전설, 제주노루 “웡~, 컹~!” “엇, 무슨 소리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갑작스런 소리에 집중했다. 짐승 소리가 분명했다. “웡~, 컹~, 훵~!” 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소리 나는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덩치 큰 개소리를 닮았지만 약간의 쇳소리가 섞인 이 날카로운 소리는 낯설지만 야생의 기운이 살아 있다. 야생을 만날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사삭!” 저 멀리 풀숲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움직임을 감지한 순간, 곧바로 후다닥 달아났다. 풀숲 사이로 노루의 멋진 뿔이 얼핏 보였다. 수컷이구나. 노루는 수컷에게만 뿔이 난다. 안타깝게도 사진에는 담지 못했다. 잠시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자 허탈함과 함께 심장만 콩닥거렸다. 이렇게라도 제주노루를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여기는 한라산, 우리는 지금 윗세오름을 향해 걷고 있는 중이다. 숲에서는 발자국과 똥, 뿔질 같은 흔적으로만 야생동물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가까이에서 제주노루의 울음소리까지 듣다니 가슴이 벅찼다. 그전에서도 제주노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제주 사람의 안내로 아름다운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다는 노루생이오름으로 향했다. 오름으로 천천히 가던 중 뭔가가 우리 앞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노루닷!”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니 금세 풀숲으로 숨어버렸다. 노루궁뎅이만 얼핏 보였다. 사촌지간인 사슴과 고라니와 달리 노루는 엉덩이에 하얀 털을 달고 있다. 마치 바지 엉덩이에 하얀 천을 덧댄 것처럼 귀여운데, 이것이 노루의 특징 중 하나이다. 너무 급작스런 만남이라 하얀 털이 보였는지 안 보였는지조차 기억나질 않는다. 그래도 야생의 노루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키 큰 나무와 풀들이 빼곡하게 꽉 들어찬 한라산, 이 숲에 제주노루가 없었다면 얼마나 황량할까? 제주 사람들은 옛날부터 노루를 영물로 여겨 함부로 죽이거나 해하지 않고 귀한 동물로 대접했다. 야생성인 제주노루는 저녁 무렵에 중산간 지역에 나타나 먹이를 찾는다. 제주와 한라산의 풍경에서 노루를 빼놓을 수 없는 한라산의 상징이자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서 야생동물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도 한라산이 유일하다. 제주노루는 육지에 있는 노루와 같은 종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분리되어 오랜 기간 동안 섬의 기후와 지형 등의 영향을 받아 고유의 토착종으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이름도 ‘제주노루’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전설은 무너지고 말았다. 제주도의회는 2013년 2월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을 가결하여 2013년 7월부터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제주노루를 포획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2014년 1월 제주도는 2013년 7월부터 12월까지 노루 포획 작업을 실시해 1,249마리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각 군에서 포획한 것인데, 6개월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은 수가 죽어갔다. 대부분 생포보다는 사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여 년 동안 노루 때문에 농작물이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노루를 잡아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콩, 배추, 당근, 무 등 노루가 다녀간 밭은 수확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래서 농민들의 불만이 매우 컸다. 제주노루의 피해 입은 농민이 지자체에 신고를 하면 엽사가 현장으로 나와 노루를 포획한다. 해발 400미터 이하 지역에서만 포획할 수 있고 보호지역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잡은 노루는 상업적 거래를 금지하고 잡은 사람이 스스로 처리하거나 지역 주민에게 무상 제공하도록 했다. “엽사들이 어디서 얼마나 잡는지 누가 알겠어요?” 제주 마을의 한 이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2011년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조사 결과, 제주노루는 17,756마리가 살고 있고 지금은 2만 마리 가량으로 늘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러나 개체수는 여전히 논란중이다. 개체수 조사가 이뤄진 것은 2009년(약 12,000마리 추정)과 2011년(약 17,000마리 추정) 단 두 차례인데, 제주 전체가 아닌 일부 표본지역 조사를 바탕으로 개체수를 추정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 노루의 개체수가 늘었는지, 단지 사람들과 접촉이 늘어난 것일 뿐인지 확신하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제주의 환경단체들은 노루 개체수 조사 결과에 대한 신빙성이 부족하여 실제 몇 마리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기에 앞서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과 전기울타리 설치 같은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루와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은 성급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노루는 한때 멸종위기까지 갔다가 다시 개체수가 늘어났다. 1980년대에는 한라산에서 노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멸종위기에 놓였던 야생노루는 1987년부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와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인 보호운동을 벌여 개체수가 늘어났다. 노루 먹이 주기, 밀렵 단속, 올무 수거 등 보호활동을 벌여 개체수가 늘어났다. 제주도의 해발 400∼600m 지역은 원래 노루의 땅이다. 그러나 지금은 골프장, 리조트, 카페 등 상업시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중산간 지역을 일군 밭이나 목장도 늘어나고 있다. 서식지를 잃은 노루는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내려와 농작물을 뜯어먹다가 그물에 걸리고, 개에 물리고, 자동차에 희생되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중산간 지역으로 올라가 개발을 하면서 노루와 갈등이 심해진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죽어가는 노루는 몇 마리나 될까? 3년 후 노루의 숫자가 줄어들면 사람과 노루가 과연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정말 이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 한라산국립공원 www.hallasan.go.kr * 노루생태관찰원 http://roedeer.jejusi.go.kr * KBS 파노라마 ‘무너진 전설 한라산 노루’ 다시보기 http://www.kbs.co.kr/1tv/sisa/panorama/vod/view/2215243_68560.html 반달곰이 지리산에서만 사는 까닭 한편, 지리산에서는 아기 반달가슴곰 5마리가 태어났다. 올 2월에서 3월에 어미 3마리가 모두 5마리를 낳았는데, 나무굴에서 2마리, 나무뿌리 아래에서 1마리, 바위굴에서 2마리가 태어났다. 2009년 야생에서 아기 곰이 처음으로 태어난 뒤 가장 많은 아기 곰이 태어났다. 이제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은 35마리로 늘어났다. 곰은 독특한 방법으로 새끼를 낳는다. 5~8월에 암수가 짝짓기를 하지만 수정란이 암컷의 자궁을 떠돌다가 늦가을 겨울잠을 자기 직전에 어미의 영양 상태가 좋아야 자궁벽에 착상된다. 그리고 1~2월 겨울잠을 자는 보금자리에서 아기 곰 1~2마리를 낳는다. 즉, 어미가 잘 먹어야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독특한 ‘착상지연’ 방법으로 새끼를 낳는다. 전 세계에서 곰은 8종류가 살고 있다. 자이언트 팬더, 안경곰, 말레이곰, 느림보곰, 미국흑곰, 불곰, 북극곰, 반달가슴곰인데, 이 곰들은 모두 그 수가 많지 않아 국제보호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 중 한반도에서 사는 곰은 불곰과 반달가슴곰이다. 불곰은 백두산에서 강원도 북부 금강산까지 살았고, 가슴 가운데 흰 반달 모양의 무늬가 있는 반달가슴곰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해발 1,000미터 이상이 되는 전국의 깊은 산에서 살았다. 그런데 남한에 있는 반달가슴곰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해로운 맹수를 잡아 없애기 위해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을 벌이면서 곰과 호랑이, 표범 같은 대형포유류를 많이 잡았다. 1915년에는 곰 261마리, 1916년에는 168마리를 잡았는데, 해마다 수가 줄어들어 1943년에는 37마리를 잡았다. 이 해수구제 사업으로 잡아들인 곰은 무려 1,059마리나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강원도와 지리산에서 잡힌 곰은 모두 200여 마리가 넘었고, 1960년대 지리산에서만 40여 마리를 잡아 들였다. 전국에서 찾아온 밀렵꾼들이 스프링 올가미와 감자폭탄 같은 밀렵도구로 닥치는대로 잡아들였다. 이후 야생에 살던 곰은 점점 사라져 버렸다. 호랑이와 표범, 스라소니, 늑대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멸종되고 말았다. 2000년 무렵 야생동물 전문가들이 조사를 벌여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만 겨우 5마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대로 두면 곰은 몇 년 안에 모두 멸종될 것이다. 그러자 환경부는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200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야생곰 6마리, 2005년에는 러시아와 북한에서 14마리를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했다. 이 중 몇 마리는 자연적응에 실패해서 계류장으로 되돌아왔고, 밀렵도구에 걸리거나 병 때문에 죽은 곰도 있었다. 보전생물학자들은 자연 상태에서 포유동물 한 종이 멸종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50마리는 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야생동물의 복원은 숲에 동물을 풀어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곰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전문적인 연구와 조사,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러시아 출신, 북한 출신, 동물원 출신, 지리산 출신까지 고향은 서로 다르더라도 유전자가 같은 곰을 방사해야 하고, 계절에 따라 어떤 먹이를 먹고, 겨울잠은 어떻게 자는지, 새끼는 어떻게 낳는지, 발자국과 배설물 조사를 통해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등 생태조사가 필요하다. 또, 기후와 토양, 식물의 종류, 동물질병과 오염문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한 연구도 필요하다. 숲의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그만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복원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야생동물 전문가와 예산도 마련되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곰과 사람이 서로의 공간을 배려하면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 복원 뿐 아니라 월악산에서는 산양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고, 소백산에는 여우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멸종은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이루어지지만 복원은 매우 더디고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 *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http://bear.knps.or.kr/bear/main.do
그렇다면 야생동물은 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까? 첫째, 새와 야생동물이 벌레와 곤충을 잡아먹어 농작물의 피해를 줄여주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 둘째, 생태적 가치다. 멧돼지가 땅을 파면서 흙을 뒤집어 주고, 다람쥐와 곰, 새는 열매를 먹고 똥을 싸면서 씨를 숲 곳곳에 옮겨 주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처리하면서 숲의 생태계를 유지시켜준다. 셋째, 레크리에이션 가치다. 사람들이 꽃 사진을 찍고 나무를 찍으면서 즐거움을 얻듯 숲에서 야생동물을 보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넷째, 사회적 가치다. 야생동물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순화되어 범죄가 줄어들고 사회질서가 잘 지켜지면서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다섯째, 교육적 가치다. ‘교육 • 과학적 가치’라고도 하는데, 박쥐가 전파를 쏴서 목표물을 찾는 것을 보고 레이더장비를 발명했듯 동물에게서 이런 다양한 지혜를 얻었다. 여섯째, 숲에서 새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면서 안정을 얻는 심리적 가치도 있다. 야생동물이 숲에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자연생태계에서 그들만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농작물 피해를 입고 사람을 위협한다고 해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인간에게 이롭다고 해서 필요한 존재이고, 해롭다고 해서 없애야할 존재가 아니다. 우리처럼 따뜻한 체온을 가졌고 심장이 뛰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 한국의 멸종위기종 www.korearedlist.go.kr
|
||